임피향교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메인 콘텐츠

HOME > 마을소개 > 마을소개

마을소개

임피면

임피면은 남산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읍내, 축산, 미원리가 있고, 남으로는 보석,술산,월하,영창리가 있는데 총 7개리 39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임피면은 본래 백제 시산군의 일부로, 피산,흔문,소도,실소출이라고도 했고, 신라때 와서 군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고려때 현으로, 조선말때에는 다시 군으로 부르게 되었다.


임피 옥구

임피 옥구는 동국여지승람에 임피는 고사재라 했고, 옥구는 마슬이라 하여일본과 왕래하는 요로에 자리하였고, 백강의 포구인 군산 일대는 기벌포라하여 경계하고 진호하는 포구를 의미하였고 임피라는 명칭은 신라 통일 후 완산주 설치와 더불어 한자이름으로 바뀌었다.
임피군은 옛지명으로 현내,동일,동이,남일,남이,남삼,남사,서삼,북일,상북,하북,북삼으로 나뉘어져 불리웠는데,임피면은 임피군의 한 지역으로 임피읍내가 있음으로 현내면이라 불리웠다.


1914년 군, 면통합에 따라 임피면은 남일면, 남이면, 동이면의 각 일부와 익산군 일부와 병합하여 7개리로 개편 관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피향교

임피향교는 조선태종 3년에 전국 360여개의 향교창설과 더불어 대정동(임피면 축산리 교동)에 창건하였고, 그 후 인종8년에 서모곡(임피면 미원리 서모)로 이전, 숙종36년에 장유동(임피면 성내리)로 옮기고 대성전과 명륜당을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로는 취성산(축성산이라고도 함)의 동쪽 기슭에 상주사가 있는데 서기606년 신라 진평왕때 혜공대사가 창건하였고, 서기 1762년 조선 영조때 학봉선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고 두금봉 아래에는 보천사가 있는데 신라때 창건후 일제시대때 일본인에 의해 폐사했던 것을 1963년 백낙도 화상에 의해 재건되었다.


채만식 생가

탁류의 저자인 채만식 선생의 생가와 집필 장소 및 묘가 축산리 계남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 및 카피라이터 메뉴

임피향교촌

로그인

로그인

  • ID저장 보안접속